Pigment, Painting, Physical
안두진
세계에 대한 지식은 강박증을 유발한다. 초거시세계에서 초미시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어적 혹은 시각적 버전들로 우리에게 세계관들을 강요한다. 의외로 이러한 세계관들은 과학 다큐멘터리, SF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그래픽 이미지들로 번안되어 결국 유사한 대중적 이미지들을 유통시킨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단순화 때문에 예술가들의 세계관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의 평행우주이론에 의하면 다른 우주들은 우리가 지각하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양자역학의 이론들 가운데는 우주가 수없이 많은 가능성들로 분기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있다. 예술가의 작품세계가 그대로 세계관이 될 때 그 역시 그런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두진의 세계관은 그가 그리는 풍경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그의 풍경화에서는 원근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 것과 가까운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서의 원근법은 작은 것을 크게, 큰 것을 작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로 그의 작품에서 빛 혹은 대기는 보통 짙고 붉은 핑크색을 띠는데, 이는 그의 세계를 특징 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핑크색의 대기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서 볼 수 있는 메탄 대기층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사물들 가운데에는 나무나 풀, 때로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호흡을 할 수 있는 환경임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그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거대한 암석들이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 마치 주인공들처럼 등장하는 이 바위들은 ‘애니멀-베제탈-미네랄’의 순서가 아닌 ‘미네랄-베제탈-애니멀’의 층위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바위가 사유하고 식물이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동물이 하부구조를 이루는 세계이다.
이 세계를 생성시키는 우주는 무지갯빛을 띠고 있다. 이 무지개는 사물들에 커다랗게 혹은 미세하게 깃드는데, 아마도 이 세계에서의 진화는 이 무지개(혹은 우주적 에너지)가 삼라만상을 물들이는 파라다이스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그것이 내뱉는 계시는 모두 소음들로 이루어진다. (<쿠쿠쿠쿵>) 이 세계에서 흐르는 것은 날카로운 선들의 다발로 이루어진 강 혹은 바다이며 이것들은 때로 지상의 위로 오르기도 한다. (<쿵! 쿵!>)
또한 이 세계에서는 사유의 역량에 의해 시간이 역행하기도 한다. 이 전시의 주요 연작인 <움직이는 돌>은 총 9개의 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작품에서 숲 위에 놓인 거대한 바위는 자신이 깎고 지나온 자욱을 다시 역행하여 움직인 뒤 마치 활주로에서 날아오른 비행기처럼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모든 것은 알려진 세계와는 다른 개념적 배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안두진은 동시대 미술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와 유사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풍경을 강박증에서 비롯된 광기에 근접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화가의 기법은 세밀함과 무한한 반복을 요구한다. 그의 뇌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림으로 가시화된다는 것이 우리에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이다. 끊임없는 운동이다. 입자물리학적 관점에서 멈춰있는 것들은 없으며, 원자단위에서는 전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지금 책상에 앉아있는 나는 빛의 속도로 있으며 그 빛의 속도로 몇 시간 째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이 글의 거리는 태양계만큼이나 클 것이다. 어쨌든 끊임없이 움직이는 입자의 산물처럼 ‘되어진 그림’들의 물감들은, 각 개별의 사건-층위에서 각자를 보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빛의 속도를 품은 물감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니 이 얼마나 이중부정보다 강한 강조인가!
안두진 작가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