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경

The Voice of Hyekyung Ham

함혜경

함혜경은 픽션을 바탕으로 독백의 내레이션 형식으로 된 영상을 만든다. 실상 그의 픽션은 대부분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픽션의 형식을 띠는 것은 단지 제3자, 그것도 외국어로 내레이션을 하는 화자에게 위임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나 일어, 심지어 이란어로 녹음된 내레이션은 작품에 독특한 작가-화자-주체의 삼각관계를 불러일으킨다. 2003년의 첫 작품인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으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는 차용된 이미지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중첩시키거나 혹은 역으로 이야기 위에 차용된 이미지를 편집하여 연결해 왔다. 이로써 그의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계기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듯한,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오간 시간과 말들에 대한 반추가 섬세하게 전개되어 왔다.

어둠이 사라지고, 2016, single-channel video, sound, b/w, 10:00

함혜경의 작품에서 서사를 이루는 독백은 대체로 과거의 회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의 허구적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삶과 사람들에 대해 회고하면서 사랑과 이별, 꿈과 좌절, 외로움과 위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소리는 함혜경의 작품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비가시적 화자를 둘러싼 감정과 공기를 가시화한다. 독특하게도 2016년 작품인 <어둠이 사라지고>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시내를 가로질러 걷다가 누군가의 자동차를 타고 비가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는 단순한 이동시간 동안, 독백과 더불어 그녀가 만난 남자와의 대화를 전한다. 때로는 대사가 들리다가 때로는 자막만이 흐른다. 이 작품의 제목은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암시하기도 하고, 작가가 경험한 삶의 어떤 순간을 반어적으로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첫사랑, 2017, single-channel video, sound, color, 11:30

2017년 작 <나의 첫사랑>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자신의 끝나버린 첫사랑에 대해 회고하는 남자의 대사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작가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입한 미국의 바닷가 사진과 함께 어떤 모텔의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 것처럼 전시공간을 연출했다. 작품 속에서 남자 주인공의 대사는 두 개의 다른 톤으로 전달되는데, 뒷부분의 대사는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멀리서 건 전화기 속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그가 “당신 목소리는 내가 글을 쓰면서 상상했던 것과 정말 똑같아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작가가 주인공에게 건네는 대사이기도 하다. 작가와 화자의 중첩은 역으로 작가의 삶과 영화적 순간의 중첩을 떠올리며, 관객들의 기억에 잠재된 원형적인 시간과의 중첩으로 이어진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2018, single-channel video, sound, color, 12:32

2018년 작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는 주인공이 자신의 롤모델처럼 생각했던, 어느 날 사라져버린 전도유망한 건축가와의 기억을 더듬는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과거의 시간을 언제든 다시 불러낼 수 있는, 화자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로 대사가 이어지는 이 작품의 배경은 도시와 건축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가는 사람들과 도로의 차량들이며, 사운드트랙 역시 도시의 소음과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강조하는 신디사이저 음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시는 ‘이브’라는 주제의 전시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브는 ‘이전’ 혹은 ‘전날’을 의미한다. 즉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그리고 ‘그’로 대변된 타자가 어떻게 작가의 삶의 일부를 차지해 왔는지에 대한 소구의 시간을 가리킨다.

예술감독 유진상

 “그렇다면 왜 작가는 진부하고 지루한 대사와 소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작가 스스로는 한사코 자신이 로맨스 작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맨>(2013), <거짓말하는 애인>(2014), <멀리서 온 남자>(2015)에는 연일 흘러간 프랑스 영화나 흑백 영화시대에서나 자주 등장할 법한 대사들이 흘러나온다. 이에 필자는 함혜경의 자조적인 대사들이 직설적으로, 혹은 내용적으로 연인들 간의 불신과 애증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과 작가와의 복합적인 연인관계를 상정하고 있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고동연(미술사), “The Voice of a Man in Ham’s Video: What Happened to the Audience Who Has Been Rejected and Confused?”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영화, 음악, 소설, 예능,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 중 작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인상 깊게 기억된 단어 하나, 혹은 문장 하나에서 작품이 시작된다. 그 파편들은 함혜경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재구성되며 세포처럼 분열, 증식을 거듭하며 하나의 완결된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 한다. 평면적인 서사 라인을 하나의 뼈대 삼아,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온라인 상에 공유된 무료 음악, 번역과 녹음, 자막 작업을 거쳐 그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작품이 종료되고 뒤 이어 흘러나오는 크레딧을 보면 대부분의 작품이 ‘1인 프로덕션’의 방식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촬영이나 편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데에는 분명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러한 아날로그적 시스템을 고수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있다.”

최정윤(큐레이터), 함혜경 개인전 <보이스 오프> 2017

함혜경
b. 1983
개인전
2020 <평온의 섬>, 백남준아트센터 이음공간, 용인
2019 <의문의 가장자리>, 갤러리 룩스, 서울
2018 <필로우 토킹>, 돈의문박물관마을, 서울
2017 <보이스 오프>, 위켄드, 서울
2015 <너에 대한 나의>, 스페이스바421, 서울
주요 단체전
2020 <서울사진축제: 보고싶어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예술가 협업프로젝트: Space Cowboy>, 스페이스K, 서울
2018 <이브>, 삼육빌딩, 서울
2017 <끝없는 밤>,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
<유영하는 삶>, 갤러리 룩스, 서울
<관악구 조원동 1645-2>, 강남아파트, 서울
2016 <말하지 않은 것들>, 한미갤러리, 서울
<소제蘇堤 빈집>, 소호헌 12 SPACE, 대전
<Under My Skin>, 하이트컬렉션, 서울
2015 <A Man from Afar, Bügeleisen>, POOL, 함부르크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아트선재센터, 서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DMZ 접경지역, 철원
2014 <응답하라 작가들>, 스페이스오뉴월, 서울
<Report on an Artist-in-Residence Ile Royale II>, 오산시립미술관, 오산
<Report on an Artist-in-Residence Ile Royale I>, 금천예술공장, 서울
2013 <Hal Project: Collective Diary>, Space Mass, 서울
2011 <여의도 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 일민미술관, 서울
2009 <Video: Video & 0>, 아르코미술관, 서울
2007 <Yeol전>, 인사미술공간, 서울
2006 <Plurisensoriel 4>, Le Centre Culturel de Flaine, 그르노블
2005 <용장 아래 약졸없다>, 희망갤러리, 서울
<안녕 언니 오빠들>, Gallery 27, 의왕
2004 <AIAS 2004>, AKI Art Academy of Art and Design, 엔스헤데
<Face to Face>, 프랑스문화원, 서울
<영 비디오 쇼쇼쇼>, 쌈지스페이스, 서울
2003 <시간의 결정>, 덕원갤러리, 서울
스크리닝
2020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20주년 특별전, 서울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II 함혜경, 주홍콩한국문화원, 홍콩
2019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단편경쟁, 고양
2018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세실극장, 서울
2016 스크리닝 프로젝트 동시상영 #5 확장하는 발화, 오픈박스, 서울
2009 Everyday Life within Insa Art Space, 제로원디자인센터, 서울
Zaim Festa, Zaim Annex, Miaca Screening, 요코하마
2007 Video Art Biennale, Kunsthaus Graz, 본
IASmedia Screening, 서울아트시네마, 서울
Video in Seoul, 미로스페이스, 서울
2003 인디비디오 페스티벌, 일주아트센터, 서울
방콕 필름 페스티벌, 방콕
수상
2004 그랑프리, Association of Independent Art and Design Schools
레지던시
2012 노마딕 레지던시-이란, 테헤란
작품 소장
아르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