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주

Façade

정정주

정정주는 오랫동안 현대식 건물의 구조에 대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등의 현대 건축가들이 정립한 육면체 구조의 건물은 내부와 외부의 유기적 관계, 빛의 유도와 반사를 통한 실내의 채광, 그리고 공간의 기능성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합들을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도시의 전면을 뒤덮고 있는 이 건물들의 파사드는 아름다운 장식적 표면인 동시에 기능적 피부 혹은 막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시각적 기호로 작동한다. 물론 이 건물들이 지닌 역사,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기억들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바로 이 콘크리트 육면체의 공간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것이다.

현대식 건물 미니어처를 제작한 뒤 그 안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소형 카메라를 통해, 정정주는 마치 거대한 건축물의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해 왔다. 또한 지난 몇 년 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잡한 건물의 벽을 이동하는 빛과 그림자의 변이, 반사, 투사 등을 영상 작업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끊임없이 황도를 따라 이동하는 태양의 위치이다. 미니어처 작업이 복수의 인공적 광원에 의한 흑백 그림자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외부에 확대하여 보여주는, 즉 밤의 시간대를 다루는 것이었다면, 영상 작업은 그보다 더 낙관적으로 다양한 색채를 강조하는 낮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빛의 시간성은 <해든 미술관 로비>(2019)에서 보듯, 인위적 편집과 광원의 숫자가 조정된 추상적 구성으로 인해 더욱 환상적이고 주관적인 연출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적 공간과 그 위에 투사된 빛의 추상적 조합은, 동일한 크기를 지닌 다양한 형태의 모듈과 색면으로 이루어진 <Façade2019>에 이르러 완전히 새로운 전개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도날드 저드(Donald Judd)의 미니멀리즘과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모듈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데, 다양한 구조와 색면들을 지닌 입방체들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그 자체만으로 마치 도시의 수많은 파사드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조합은 이미 2017년 수직으로 주택 미니어처 모듈을 쌓아 올렸던 <Tower>와 같은 작품에서 예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건축적 맥락은 2020년에 이르면서 <Horizontal Façade>, <Persfektive> 등 더욱 기하학적 추상에 가까운 간결한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정주의 작업에서 일관성 있게 선보여 온 현대건축의 공간과 그에 투사된 빛의 관계는, 때로 <상무관>과 같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건물에서 역사적 기억의 환기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공간, 면, 빛의 상호관계라는 핵심적 요소들 자체의 변주로도 나아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니어처 작업들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던 ‘복합적 시점’들이 이제는 작품 내부에 내재된 것으로 간주되는 대신, 작품의 ‘정면성’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복합적 구성을 통해 마치 ‘큐비즘’의 그것처럼 중첩되는 면들로 표현됨으로써 모든 면들이 정면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파사드’는 작가에게 있어 실로 새로운 시공간적 유희와 조합의 장이 되고 있다.

예술감독 유진상
정정주
b. 1970
개인전
2021 <Illuminate>, 갤러리조선, 서울
<빛의 혀>,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0 <Illumination>, Kunstverein Haus der Kunst Enniger, 뮌스터
2019 <보이지 않는 빛>, 갤러리조선, 서울
2017 <발생하는 풍경>, 갤러리조선, 서울
2015 <보이지 않는 빛>, 시카미술관, 김포
2012 <낯선 방문>, 갤러리조선, 서울
2008 <City of Gaze>, Vanguard Gallery, 상하이
주요 단체전
2021 <광주비엔날레: 5.18민주화운동 특별전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구 국군광주병원, 광주
2020 <별이 된 사람들>,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흰 밤 검은 낮>, 경기도미술관, 안산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9 <라이트 온 더 무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팬텀 시티>, 세화미술관, 서울
<하늘, 땅, 인간>, 해든미술관, 인천
2018 <천년의 하늘 천년의 땅>,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17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6 <The Future is Now>, La Friche Belle de Mai, 마르세유
수상
2010 오늘의 작가, 김종영 미술관
2002 베르기쉐 미술전, 바덴 미술관
레지던시
2009 금천예술공장, 서울
2006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2003 쌈지스페이스, 서울
작품 소장
부산현대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
인터렉티브아트 뮤지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구축적인 것의 조각적 환원 – 정정주
안소연(미술비평가)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한 <Composition>(2021) 연작은 재료와 형태의 측면에서 <Sfaçade>(2021)와 <Pesfektive>(2021) 연작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정정주의 개인전⟪Illuminate⟫(2021)에서는 <Composition21-1>과 <Composition21-2>가 공간의 벽면을 하나의 받침대 삼아 제 형태의 조각적 입체감을 드러냈다. 그것을 부조의 범주에 놓고 한쪽 방향에서 회화적 환영에 힘입어 삼차원적 총체성을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정정주는 <Composition> 연작에서 조각의 삼차원적 윤곽을 해체하여 가변성을 전제로 한 (불확실한) 움직임에 주목하도록 했다. 기존의 건축적 프레임에서 비롯된 특유의 기하학적 육면체 구조물이 하나의 조각적 윤곽을 결정짓는 표면을 담당해 왔다면, <Composition> 연작에서는 시각적 삼차원성을 결정짓던 육면체의 구조물이 사라지고 그 내부를 가로지르던 평면이 서로 지탱하며 벽으로부터 미세하게 솟아 있다. <Composition21-3>에서 그러한 정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전시 공간 바닥에 받침대 없이 놓인 이 작업은 스테인리스스틸 판으로 두께를 달리 용접하여 만든 두 개의 구조물이 서로 형태를 지탱하며 수직으로 세워 있어 실제의 삼차원 공간에서 각 면이 바닥에서 들어 올려진 채 형태의 구축적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Composition> 연작이 <Pesfektive>나 <Sfaçade>와 다른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Sfaçade>를 보면 앞면을 제거한 육면체의 상자 안에 크고 작은 면이 어떤 구축의 원리를 반영한 듯 임의로 조성된 삼차원의 공간적 깊이감을 나타낸다. <Sfaçade>는 언뜻 볼 때 입방체 내부에 원근법적 사선이 반복되어 있으나 사실은 원근법적 공간에 대한 해체 내지는 새로운 중첩을 시도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Sfaçade>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체적인 공간감을 시각화하기 위해 공간 모서리에서 뚫고 나오는 무수한 사선과 기울어진 면이 시각을 압도한다. 정정주는 스테인리스스틸 판을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절단하고 마름질하여 공간 안에 삼차원적으로 구축하되 그 표면에 각각의 채색을 더함으로써 빛과 그림자에 의한 명암 차를 회화적으로 나타냈다. 입체적 착시 효과를 주기 위해 (상투적인) 회화의 명암법을 적용한 것처럼 보이는 채색 효과는 사실 삼차원적 얕은 공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빛과 그림자의 실제 효과와 미세하게 충돌하면서 오히려 기존의 구축적 관계에 의한 형태의 단일 윤곽을 계속해서 방해하며 해체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Sfaçade>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삼차원적 공간 내부의 총체적이고 합리적인 양감으로서의 부피보다는 끊임없이 커졌다가 작아지며, 어두웠다가 밝아지는 삼차원 공간 내부의 잠재적이며 가상적인 형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Pesfektive> 연작에서는 색 대신 빛이 사용됐다. 정정주는 스테인리스스틸을 이용하여 특유의 건축적 공간 모형을 토대로 한 삼차원의 기하학적 추상 공간을 <Sfaçade>와 비슷하게 설계해 놓고, LED 색 조명을 그 내부 모서리에 삽입해 빛과 그림자의 효과에 색채를 더했다. 그것은 마치 건축물의 미세한 틈을 뚫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온 빛의 현존을 느끼게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빛의 현존이 공간 내부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명쾌하게 밝혀주기보다 외부에서 들어온 빛의 움직임에 의해 공간 내부의 비가시적인 부피감과 마주하게 한다는 점이다. 빛에 의해 변화하는 공간 내부의 부피감은 색채의 효과로 인해 물질성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 이를테면, <Sfaçade>와 마찬가지로 <Pesfektive> 연작은 휘어지고 쪼개지고 불쑥 솟아 있는 각각의 면이 육면체의 공간 내부에서 어떤 견고한 힘을 구축하며 지탱하고 있는 가운데, 외부로부터 새어 들어온 빛이 그 면들을 하나의 (유동적인) 외피 삼아 그 내부의 양감을 증명해 보이는 셈이다. 이는 마치 조각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개념상 닮아있다. 재료의 측면에서 같은 물질로 내부가 가득 채워졌을 거라는 고전적인 조각 개념의 범주에 대한 참조를 불러오면서, 동시에 현대 조각이 모색했던 조각의 표면/윤곽을 재조정하는 조각 내부의 역설을 환기한다.

<특정한 시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나무 구조물로 바꾸기>(1998)는 건축과 빛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정정주의 초기 작업이다. 그는 사방이 창으로 둘러싸인 건축 공간 내부에서 빛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그것의 강렬한 물질성을 경험하고, 특정한 시간에 창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형태를 나무 구조물로 감싸도록 하는 임의의 틀을 짜서 설치했다. 창문에서 바닥으로 연결된 사선의 나무 구조물은 결과적으로 실내 공간에 제3의 또 다른 공간을 구축해 낸 셈인데, 새로 조성된 이 삼차원의 공간은 외부와 내부가 겹쳐진 시공간의 특이성을 보여준다. 정정주는 나무 구조물을 만들어 그 수수께끼 같은 (비물질적인) 용적을 하나의 (가시적인) 양감으로 규정할 수 있는 구축적 조형물을 만든 것이다. 한편 그 건축 구조물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문을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 문을 열면 사선의 나무 구조물 안에 특정 시간의 뜨겁고 밝은 태양 광선이 내부를 꽉 채운 것처럼 목격되곤 했다. 이때, 정정주가 임의의 특정 시간에 실내로 들어온 빛의 형태를 포착해 만든 육면체의 견고한 틀에는 미세하게 이동하는 사선의 빛줄기가 각각의 모서리와 충돌하면서 구조물의 외피/표면/윤곽을 압도하는 ‘잠재적인 것’의 현존을 인식하게 했다.

한편 <Grand Figure>(2019)의 경우 폼보드와 아크릴, LED 조명을 사용해 내부가 텅 빈 건축적 공간을 수직으로 세운 구조인데, <Grand Figure>라는 제목에서 조각적 인체 형상의 수사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실존주의 조각에서도 이 ‘거대한 형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정정주는 건축 모형 작업에서 그 크기와 형태 등을 조각적 기원으로부터의 참조점을 환기한다. 최근 작업 <(구)광주국군병원>(2019)과 <상무관>(2019)을 보면, 실제 건축물 설계도를 기반으로 축소시켜 제작한 건축 모형은 대개 (관람자의) 신체에 상응하는 조각적 오브제의 스케일을 구현하고 있다. 그가 유년 시절에 겪었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자전적 경험을 말한 바 있기에 외부에서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온 낯선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정지된 일상 풍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시신처럼 길거리에 방치된 건축물에서 공간의 실존을 체험했을 테다. 이 건축 모형에 기반한 구축적인 조각 오브제와 추상화된 구축적 원리를 모색하는 조각적 형태 안에서 정정주의 작업에서 끊임없이 조각으로 환원되는 어떤 지점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축적인 것의 조각적 환원 – 정정주
안소연(미술비평가)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한 <Composition>(2021) 연작은 재료와 형태의 측면에서 <Sfaçade>(2021)와 <Pesfektive>(2021) 연작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정정주의 개인전⟪Illuminate⟫(2021)에서는 <Composition21-1>과 <Composition21-2>가 공간의 벽면을 하나의 받침대 삼아 제 형태의 조각적 입체감을 드러냈다. 그것을 부조의 범주에 놓고 한쪽 방향에서 회화적 환영에 힘입어 삼차원적 총체성을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정정주는 <Composition> 연작에서 조각의 삼차원적 윤곽을 해체하여 가변성을 전제로 한 (불확실한) 움직임에 주목하도록 했다. 기존의 건축적 프레임에서 비롯된 특유의 기하학적 육면체 구조물이 하나의 조각적 윤곽을 결정짓는 표면을 담당해 왔다면, <Composition> 연작에서는 시각적 삼차원성을 결정짓던 육면체의 구조물이 사라지고 그 내부를 가로지르던 평면이 서로 지탱하며 벽으로부터 미세하게 솟아 있다. <Composition21-3>에서 그러한 정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전시 공간 바닥에 받침대 없이 놓인 이 작업은 스테인리스스틸 판으로 두께를 달리 용접하여 만든 두 개의 구조물이 서로 형태를 지탱하며 수직으로 세워 있어 실제의 삼차원 공간에서 각 면이 바닥에서 들어 올려진 채 형태의 구축적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Composition> 연작이 <Pesfektive>나 <Sfaçade>와 다른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Sfaçade>를 보면 앞면을 제거한 육면체의 상자 안에 크고 작은 면이 어떤 구축의 원리를 반영한 듯 임의로 조성된 삼차원의 공간적 깊이감을 나타낸다. <Sfaçade>는 언뜻 볼 때 입방체 내부에 원근법적 사선이 반복되어 있으나 사실은 원근법적 공간에 대한 해체 내지는 새로운 중첩을 시도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Sfaçade>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체적인 공간감을 시각화하기 위해 공간 모서리에서 뚫고 나오는 무수한 사선과 기울어진 면이 시각을 압도한다. 정정주는 스테인리스스틸 판을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절단하고 마름질하여 공간 안에 삼차원적으로 구축하되 그 표면에 각각의 채색을 더함으로써 빛과 그림자에 의한 명암 차를 회화적으로 나타냈다. 입체적 착시 효과를 주기 위해 (상투적인) 회화의 명암법을 적용한 것처럼 보이는 채색 효과는 사실 삼차원적 얕은 공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빛과 그림자의 실제 효과와 미세하게 충돌하면서 오히려 기존의 구축적 관계에 의한 형태의 단일 윤곽을 계속해서 방해하며 해체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Sfaçade>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삼차원적 공간 내부의 총체적이고 합리적인 양감으로서의 부피보다는 끊임없이 커졌다가 작아지며, 어두웠다가 밝아지는 삼차원 공간 내부의 잠재적이며 가상적인 형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Pesfektive> 연작에서는 색 대신 빛이 사용됐다. 정정주는 스테인리스스틸을 이용하여 특유의 건축적 공간 모형을 토대로 한 삼차원의 기하학적 추상 공간을 <Sfaçade>와 비슷하게 설계해 놓고, LED 색 조명을 그 내부 모서리에 삽입해 빛과 그림자의 효과에 색채를 더했다. 그것은 마치 건축물의 미세한 틈을 뚫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온 빛의 현존을 느끼게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빛의 현존이 공간 내부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명쾌하게 밝혀주기보다 외부에서 들어온 빛의 움직임에 의해 공간 내부의 비가시적인 부피감과 마주하게 한다는 점이다. 빛에 의해 변화하는 공간 내부의 부피감은 색채의 효과로 인해 물질성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 이를테면, <Sfaçade>와 마찬가지로 <Pesfektive> 연작은 휘어지고 쪼개지고 불쑥 솟아 있는 각각의 면이 육면체의 공간 내부에서 어떤 견고한 힘을 구축하며 지탱하고 있는 가운데, 외부로부터 새어 들어온 빛이 그 면들을 하나의 (유동적인) 외피 삼아 그 내부의 양감을 증명해 보이는 셈이다. 이는 마치 조각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개념상 닮아있다. 재료의 측면에서 같은 물질로 내부가 가득 채워졌을 거라는 고전적인 조각 개념의 범주에 대한 참조를 불러오면서, 동시에 현대 조각이 모색했던 조각의 표면/윤곽을 재조정하는 조각 내부의 역설을 환기한다.

<특정한 시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나무 구조물로 바꾸기>(1998)는 건축과 빛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정정주의 초기 작업이다. 그는 사방이 창으로 둘러싸인 건축 공간 내부에서 빛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그것의 강렬한 물질성을 경험하고, 특정한 시간에 창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형태를 나무 구조물로 감싸도록 하는 임의의 틀을 짜서 설치했다. 창문에서 바닥으로 연결된 사선의 나무 구조물은 결과적으로 실내 공간에 제3의 또 다른 공간을 구축해 낸 셈인데, 새로 조성된 이 삼차원의 공간은 외부와 내부가 겹쳐진 시공간의 특이성을 보여준다. 정정주는 나무 구조물을 만들어 그 수수께끼 같은 (비물질적인) 용적을 하나의 (가시적인) 양감으로 규정할 수 있는 구축적 조형물을 만든 것이다. 한편 그 건축 구조물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문을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 문을 열면 사선의 나무 구조물 안에 특정 시간의 뜨겁고 밝은 태양 광선이 내부를 꽉 채운 것처럼 목격되곤 했다. 이때, 정정주가 임의의 특정 시간에 실내로 들어온 빛의 형태를 포착해 만든 육면체의 견고한 틀에는 미세하게 이동하는 사선의 빛줄기가 각각의 모서리와 충돌하면서 구조물의 외피/표면/윤곽을 압도하는 ‘잠재적인 것’의 현존을 인식하게 했다.

한편 <Grand Figure>(2019)의 경우 폼보드와 아크릴, LED 조명을 사용해 내부가 텅 빈 건축적 공간을 수직으로 세운 구조인데, <Grand Figure>라는 제목에서 조각적 인체 형상의 수사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실존주의 조각에서도 이 ‘거대한 형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정정주는 건축 모형 작업에서 그 크기와 형태 등을 조각적 기원으로부터의 참조점을 환기한다. 최근 작업 <(구)광주국군병원>(2019)과 <상무관>(2019)을 보면, 실제 건축물 설계도를 기반으로 축소시켜 제작한 건축 모형은 대개 (관람자의) 신체에 상응하는 조각적 오브제의 스케일을 구현하고 있다. 그가 유년 시절에 겪었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자전적 경험을 말한 바 있기에 외부에서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온 낯선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정지된 일상 풍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시신처럼 길거리에 방치된 건축물에서 공간의 실존을 체험했을 테다. 이 건축 모형에 기반한 구축적인 조각 오브제와 추상화된 구축적 원리를 모색하는 조각적 형태 안에서 정정주의 작업에서 끊임없이 조각으로 환원되는 어떤 지점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