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고리 : 뾰족한 것과 매끄러운 것
최지원
최지원은 인형을 그린다. 그가 그리는 인형은 보통 ‘Porcelain Doll’ 또는 ‘Bisque Doll’ 또는 ‘China Doll’이라고 불리는 인형으로 1840년대부터 주로 독일 튀링겐(Türingen)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German Bisque Dol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은 고미술 수집품으로 분류될 만큼 고급 공예품에 속하는 이 도자기 인형은 186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에 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유행했다. 최지원이 그리는 인형은 안와(orbit)를 위한 구멍과 함께 안구가 따로 제작되어 있지 않은, 매끈한 자기의 표면 위에 눈을 그려넣은 보다 단순한 형태의 인형이다. 앤틱의 경우, 눈썹이나 눈의 형태, 입술의 모양 등으로 어느 회사에서 생산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대체로 도자기 인형은 어깨와 가슴 윗부분, 손, 발 등 노출부위만 도자기로 만들고, 나머지 신체는 천을 이용하여 봉제로 제작되어 있다. 최지원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주로 얼굴이나 상반신만 그려져 있으며 표정이나 눈, 입의 형태는 상당히 무표정한 편으로 다른 인형들에 비해 입꼬리 부분이 비교적 아래로 처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눈동자가 일반적인 도자기 인형들에 비해 작고 흐릿한 회색으로 그려져 있는 점을 특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형들을 발그레한 붉은 뺨을 지니고 있다. 뺨의 홍조는 이들이 내면에 감추고 있는 감정적 동요의 유일하고도 공통된 단서이다.
도자기 인형의 각 생산업체 구분에 관해서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할 수 있다.
https://quintessentialantiquedolls.wordpress.com/the-makers-seven-german-porcelain-factories-that-produced-china-dolls-and-identifying-their-dolls/
2020년 5월에 디스위켄드룸 갤러리에서 열린 <Cold Flame 차가운 불꽃>전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최지원의 도자기 인형 연작은 2019년 가을부터 제작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매우 짙은 단색의 배경을 바탕으로 밝은 실내의 조명에 의해 매끈하게 반들거리는 도자기 인형의 표면은 특유의 깨지기 쉬울 것 같은 단단한 질감과 부드러운 굴곡의 반사에 의해 순수하고 무결한 인상을 자아낸다. 게다가 이 인형들이 나타내고 있는 인물상은 아이들의 장난감을 위한 순진무구한 존재들이라기보다는, 마치 성모 마리아 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다. 2019년 작 <우는 여인>에서는 실제로 성모 현현(Epiphany)을 떠올리는, 눈물 흘리는 도자기 얼굴이 묘사되어 있다. 작가의 많은 작품들에서 도자기 인형은 마치 초자연적인 소설에서처럼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몇몇 작품에서는 실제로 움직이기도 한다. 2019년 작 <무제>에서는 도자기 인형이 자신의 흐릿한 눈동자에 직접 뚜렷한 동공을 지닌 갈색의 컬러 컨택트 렌즈를 넣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인형들이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흐릿한 눈동자를 지닌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흐릿한 (혹은 작은) 눈동자와 무표정한 입꼬리를 지닌 이 여성상은 이제 20대 중반의 작가가 자신과 자신의 또래 여성들에게 투영하는 전형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끄럽고 단단한 도자기 인형의 얼굴이 그러하듯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종종 그의 그림에서 이 여성들은 자주 두 명 씩 등장하곤 하는데,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특히 관객들)에게는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이다. 작가가 이들로 하여금 정면을 바라보거나 측면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 역시 이 무표정한 인형들로부터 내면적 서사를 이끌어내는 방법 중 하나이다. 물론 더 여러 명이 등장할 때도 있는데, 예컨대 2019년 작 <관조적 대상>에서 왼쪽의 인물은 반대쪽의 네 명의 인물들을 마주보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예외적인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관객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서로 마주보면서 자신들끼리의 교감을 통해서만은 이러한 표현을 드러내는 것이다.
2021년에 그려진 <뾰족한 것들의 방해> 연작은 크게 클로즈업된 얼굴 한가운데를 가리고 있는 식물의 줄기를 강조하여 다루고 있다. 분홍 가시꽃이나 긴잎 아카시아처럼 보이는 이 식물들이 상징하는 것은 비-실존적인 도자기 인형의 내면을 가로지르는 생생하거나 격렬한 감정일 것이다. <가시꽃과 여인>에서는 붉고 아름다운 가시꽃과 뾰족한 가시들이 돋아난 그것의 줄기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상 뒤에 과장되었을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다. <포개진 붉은 방>은 관객의 시선을 피해 오른편을 바라보는 붉은 옷의 두 여성 옆에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난초가 피어있다. 반면 <멜랑콜리아>에서는 한가운데의 밤하늘에 떠있는 밝은 보름달을 통해 앞부분에서 역광을 받고 있는 여인들의 심리적 동요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작들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빈번한 알레고리의 사용은 도자기 인형으로 대치된 여성상과 댓구를 이루면서 미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변주들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도자기 인형들의 사실적 존재감을 통해 극적인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출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쉽고 가볍게 소비된 후 신속하게 폐기되는 ‘요즘의 ’감정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는 아름답지만, 부주의하면 순식간에 깨져버리고 마는 도자기 인형의 시각적 특성을 대상에 입혀, 폭죽이 터져도 반응하지 않고, 으슥한 숲길에서도 담대하게 걸을 수 있는 무감각한 표정의 인물들을 그려냈다. 작가가 도자기 인형의 제작 공정이나 물성을 깊이 연구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건 그녀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단지 고민한 것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 이러한 고민을 거쳐 탄생한 작가의 ‘매끈하게 빛나는 도자기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그녀가 그리고자 했던 바로 그 ‘요즘의 감정’을 충실히, 그리고 영리하게 전달한다.”
이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