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림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추미림

추미림의 세계관은 『변신 이야기(The Metamorphoses)』의 세계관과 닮아 있다. 그리스의 시인 오비드(Ovid)는 『변신 이야기』를 통해 신-인간-동물-사물의 계열들이 수시로 다른 계열들과 호환되는 세계를 노래했다. 이에 따라 다프네(Daphne)는 월계수가 되었고 악테온(Actaeon)은 사슴이 되었으며 미노타우르스(Minotaur)와 같은 반인반수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계열들의 상호호환이 구성하는 것은 그 접점에서 일어나는 서사이며 그것은 당대의 세계관을 수식한다. 추미림은 사물-이미지-기호-정보의 계열들이 상호호환하는 세계를 그린다. 이 세계에서 각각의 계열은 그 안의 입자들을 다른 계열들로 변환하거나 새롭게 포맷함으로써 전혀 다른 기능 및 정체성과 더불어 순환을 일으킨다.

전시명인 <다름 이름으로 저장하기>는 컴퓨터의 파일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거나 포맷과 계열을 변경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추미림은 컴퓨터 화면에 떠오른 풍경 또는 위성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스크린샷과 이미지 파일 등으로 저장한 뒤, 픽셀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는 미니멀한 기호나 도형들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이를 다시 ‘일러스트레이터’의 벡터 파일로 변환하여 프린터로 출력하거나, 캔버스 위에 스텐실 혹은 종이 블록 등을 사용한 3차원의 부조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은 설치작업으로도 이어진다. 이미지를 출력한 시트지로 실내 공간 혹은 외벽을 뒤덮어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도록 연출하거나, 기호와 도형들이 끊임없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영상을 부조나 설치 작업과 조합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추미림의 작업은 기본적인 픽셀 단위에서 시작하여 무한한 확장, 연결, 조합으로 이어지는 확장적 시스템의 운영이다.

추미림은 자신의 시스템을 일종의 평행한 도시공간으로 이해한다. <Pixel Space>라는 제목으로 2007년부터 시작된 드로잉과 아크릴 연작은 2013년 설치작업 <www.the world we live in>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들에서는 테트리스를 연상시키는 색색의 픽셀 도형이 그려진 화면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간결한 드로잉으로 표현되었다. 같은 해 제작된 <양평동>, <분당>, <파리 15구> 등에서 작가는 하늘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을 종이 블록을 이용하여 부조로 재현하였다. 이후의 작품들은 더욱 추상화된 기호와 도형들로 전개되는데, 2016년의 <스텐실 연작>에서는 인포그래픽 데이터들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이 더욱 복합적으로 조합되어 드로잉과 벽화로 동시에 연출된다. 이는 패턴과 리듬, 나아가 매력적이고 예외적인 그래픽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총체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9 Color Spectrum>, <Day> 그리고 <Blue Island>로 이어지는 최근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환경으로서의 그래픽 단위들이 본격적인 확장성을 구현하고 있다. 범람하는 이미지들의 일부로 ‘발견된’ 정보나 데이터에서 출발한 이 기호들은 탈맥락화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완벽하게 새로운 유토피아적 풍경의 일부를 이룬다. 기호들은 새로운 서사와 세계관을 위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그것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선명한 색채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도래한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빛의 심연을 드러내고 쌓아가는 방법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때로는 바람이 되기도, 강이 되기도, 산이 되기도 하며 구름과 같은 풍경을 그려 놓기도 한다.

예술감독 유진상
추미림
b.1982
개인전
2020 <Satellites: 위성들>, 갤러리 룩스, 서울
2016 <일렁이는 그리드에서 태어난 새로운 형태의 모듈>, 트렁크갤러리, 서울
2014 <P.O.I(Point of Interest)>,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3 <www.The World We Live In>, Gallery Steph, 싱가포르
2010 <418: I Am a Teapot>, 디갤러리, 서울
주요 단체전
2020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대림미술관, 서울
2019 <거북이로 변신하는 방법>, Nikolaj Kunsthal, 코펜하겐
<공간탐색>,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18 <두 개의 기둥과 일곱 개의 글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대구 뉴-바우하우스>,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17 <서울포커스 25.7>,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Wonderland>, 아트센터화이트블럭, 파주
<조감적 시야>, 스페이스캔, 서울
<도시관찰일지>, Art Canbus, 시흥
2014 <가면의 고백>,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12 <Three Wishes for Christmas>, 아트센터나비, 서울
2011 <Korea Tomorrow>, 예술의전당, 서울
2009 <Wonderful Pictures>, 일민미술관, 서울
<국제인천여성비엔날레: 가까이 그리고 멀리>, 인천
<서교육십: 인정게임>, KT&G 상상마당, 서울
수상
2019 그랑프리, Unknown Asia Art Exchange Osaka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한화드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