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 Lucid Things
이미주
이미주가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삼은 <Draw Lucid Things>은 ‘분명한 사물들을 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림으로 표현한 내용은 일종의 ‘반명반음(chiaroscuro)’의 의식상태에서 바라본 것들로, 맑은 의식으로 또렷이 본 것들이라기보다는 몽상, 백일몽, 가면(假眠) 상태에서 떠오른 장면들이다. 때로 우리는 꿈속에서 본 내용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깨고 나서도 어느 쪽이 현실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곤 한다. 이 덧없고 감동적인 장면들은 분명한 동시에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불분명한 의미들로 가득 차 있어 대체로 기억에서 금방 사라져버리고 만다. 화가가 지닌,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능력이 있다면 바로 이 ‘형언할 수 없는’ 장면들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기는 능력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미주가 그린 그림들은 대체로 정물이거나 인물이 포함된 실내의 장면들이다. 그의 그림 속 사물들, 혹은 사물과 인물들은 비범한 상호관계를 보여주는데, 과장되게 자신의 무늬를 강조하거나 무늬들이 직접 살아 움직이기도 한다. 혹은 사물들 틈에서 마치 녹아버린 것 같은 인물들의 표정이 흘러나오거나 액자 속에서 솟아 나오기도 하는 등, 마치 낯선 악몽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사건들이 원근을 무시하고 뒤섞여 펼쳐진다. 2017년의 <수면장애>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인물은 장난감 북을 들고 잠에서 깨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옆의 인물(또 다른 자아?)은 손에 들고 있는 책 혹은 휴대폰을 통해 낯선 시선과 광채가 뻗어 나오는 밤의 이면을 투사하고 있다. 누워있는 인물이 덮고 있는 이불의 강아지 무늬들은 이제 살아서 그 밤의 공간을 향해 뛰쳐나가고 있다.
2020년작 <Self-reflexion>에는 자신의 테이블 위에서 순간적으로 벌어진 환영들이 기록되어 있다. 테이블 위에는 탁상시계와 안경, 문구상자, 노트와 액자 등의 잡다한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서도 색연필로 칠한 중간 톤의 풍부한 색채들은 그림 전체를 부드럽고 몽환적인 패턴들로 가득 채운다. 이 화면의 거의 모든 지점에서는 사물들로부터 작은 얼굴들이 돋아나 화면의 중앙에 보이는, 눈에서 충혈된 눈물을 뿜어내고 있는 흐릿한 인물을 바라보고 있다. 전면의 물뿌리개에서는 작가 자신의 모습처럼 보이는 여성의 얼굴들이 솟구쳐 나오는데, 그들 중 몇몇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그림은 자신의 주위에 놓인 모든 사물들에 어른거리는 작가의 심리적 투사를 보여준다.
“어떤 무엇인가가 되지 않아도 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눈에 보이는 광경들을 아무런 목적 없이 담아보고 싶어졌고 그러한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었다.”(이미주 작업노트 중) 얼핏 이런 진술은 순수 창작 행위라는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데, 나는 오히려 자본주의 제도에 편입되지 않고 소외된 노동행위에서 벗어나려는 개별자의 발버둥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이미주 작가가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친숙한 느낌을 주나 미술제도 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은 존재이기에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자유는 순수한 자유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둘 때 발생하는 자유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재환(비아트 에디터/경남도립미술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