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D Code
송민규
송민규는 2016년부터 ‘SFD’(Science Fiction Drawing)라는 약어로 통칭되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작가에 따르면 그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환상, 상상의 장면을 위해 사용하는 그래픽, 특수 효과에 기대어 오늘날의 풍경을 기호와 상징으로 번역, 편집하여 추상으로 위장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총 3부작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화 프로젝트는 태국의 전통 색채로 구현한 추상적 기호들로 구성된 제1부 <수영장 끝에 대서양>(2016)에서 시작하여 완벽한 어둠과 그 위를 지나가는 빛이라고 하는 다소 사회적 서사가 반영된 제2부 <낮보다 환한>(2017), 그리고 일상에서 범람하는 상이한 이미지들을 발췌한 뒤 그것들을 변조하고 조합한 제3부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2018)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는 이 세 개의 연작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SFD Code’를 제목으로 삼고 있다.
‘공상과학드로잉 코드’라는 전시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송민규의 작업이 참조하는 사회적, 문화적 배치물들과 구성 방법론이 지니는 특징이다. ‘공상과학’이라는 특정한 장르에서는 우주공간, 별·달과 같은 천체들의 빛,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인공물들과 광선, 미래적 서사에서 떠오르는 전쟁과 이주, 낭만주의적 혹은 세기말적 판타지로 물든 풍경 등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전형적 이미지들을 변형하고 재배치함으로써 최소한의 재현적 흔적만을 지닌 기호들로 변환시킨다. 이를 통해 관객은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어휘집(glossary)’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데 절대 암흑에 가까운 어둠, 줄무늬를 지닌 양파칩 형태의 달,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물체를 불연속적으로 포착한 빛의 궤적, 그리고 불분명한 정보의 얼룩들로 기록된 대상과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마치 기호처럼 중첩되고 조합되어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감각번역기계’는 송민규가 자신의 작업에 내재된 기계적 과정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는 아크릴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컴퓨터그래픽과 다름이 없는 화면을 제작해왔다. 컴퓨터 출력 대신 페인팅을 고수하는 것에서 그가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개입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2019년작 <다른 합성>에서 그는 마치 물감이 튀긴 자국과 같은 얼룩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회화적 사건의 기호를 가감 없이 인용하고 있다. 즉 작가의 작품에 고유한 회화적 대역을 규정해온 ‘감각번역기계’는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으로부터 좀 더 불규칙적이고 인간화된(humanized) 기호들이 혼재하는 영역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송민규의 작품세계는 사이버네틱한 기호들, 디지털 신호로 이루어진 빛나는 면들, 위상학적 운동상태에 놓인 대상들, 기계에 의해 포착된 정보화된 이미지들, 그 위에 명멸하는 왜곡과 오류(glitch)의 잔상들, 그리고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의 편린들이 맥락을 잃고 일시적으로 재편집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시선에 포착된 모습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금술을 떠올리는 제목의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에서 보듯 이것들은 동시에 등가적으로 나타난다. 마치 신과 동등한 역량을 지닌 초월적 알고리즘의 분열적 심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관객들은 무한한 독해와 불연속성의 현전 앞에 서있게 된다. 이 거대하고 빠른 속도로 분출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면들 앞에서 관객이 최종적으로 깨닫는 부조리함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이 회화라는 사실이다.
그가 ‘중첩’시키기 이전에 그 이미지들은 “어둠의 속도”라는 장소이자 영토 개념으로 표현된 작품 속에서 1) 어둠 속을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2) 밤하늘을 나는 흰 새의 비행 3) 리아스식 해안이 가진 들쑥날쑥하고 무한한 프랙털 무늬 4) 생명수의 난데없는 상징처럼 유체 운동중인 정액[sperm] 5) 상승하는 바람의 난류 6) 동굴 속의 벽화에서 발견되는 기하학적 문양 7) 시공간이 아인슈타인의 교리문답을 따라 확 꼬부라지고 휜 왜상 8) 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없는 구름 9) 끊어진 시간을 포함한 영화 필름 10) 식물들의 이미지 등등 각양각색의 자연물을 연상할 수 있다.
김남수(안무비평), <컴퓨터 그래픽의 야금술적 리듬과 생명서판으로서의 매체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