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열

레트로토피아

윤세열

윤세열의 작품은 한국화의 전통적인 기법에 충실하게 비단에 먹선으로 그린 산수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들은 주로 서울의 풍경, 그 중에서도 강북의 밀집된 도심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 등 한강에서 원경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서울의 명산들은 수백 년 동안 수도를 다룬 한국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다루어져 왔듯이 여기서도 동일한 배경을 차지한다. 전경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수상으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나룻배들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은 선비들을 태우고 한갓지게 떠다니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산 아래의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주택과 빌딩들, 아파트 단지들의 밀집된 풍경이다.

전시의 제목인 ‘레트로토피아’는 과거의 회상을 의미하는 접두어 ‘retro-’와 장소를 가리키는 ‘topos’의 ‘-pia’가 연결된 것이다. 즉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풍경 간 중첩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먹과 비단을 사용하며 현재의 소재를 다루는 자체가 이미 그러한 의미를 띄겠지만,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그러한 중첩 속에서 변함없이 바라보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관계에 대한 시선이다. 어떤 의미에서 윤세열의 작품이 보여주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산업화되고 근대화된 극단적인 개발과 밀집, 그리고 고층화와 양극화 등을 향해 폭주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도시 풍경을 과거의 낭만적이고 자연 친화적이며 공간적 여유와 풍류가 흐르던 세계와 병치시킴으로써 동시대가 상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거의 ‘서번트 증후군’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집요한 붓끝이 담고 있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가 현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 외에도 자신이 몸담고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세열의 그림에서 과거와 현재의 중첩은 더 커다란 산수화의 상징적 시간 속에서 압축된 장면으로 나타난다. ‘산수’는 본디 관념적 공간이라서, 그려진 것들은 그 상호관계의 기호들로 읽을 수 있다. 회화라기보다 일종의 ‘글쓰기’에 가까운 이 필선(筆線)들의 빽빽한 조합은 역사 속에 남겨진 많은 유물들처럼 비단에 기록됨으로써 보다 장구한 세월을 함축하고 있다.

<산수강호연파>에서 이 시구를 읊는 이는 강 위의 나룻배에 타고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선비일 터인데, 그에게 배경의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한 시대의 부산함일 뿐이다. 시간적 스케일에 대한 작가의 극명한 감정을 보여주는 <인생지사회전목마>는 그림 자체가 마치 기호와도 같다. 끝없이 순환하는 현재성의 고원에서 지나치는 풍경들은 덧없이 흐드러지며, 이쪽과 저쪽,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2020년에 이르러 윤세열의 작품에는 커다란 변화가 엿보인다. 붉은 색을 주조로 하는 채색화와 산수의 준법(峻法)을 보다 관념화한 두 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전의 극사실적 묘사로부터 보다 자유분방한 회화적 해석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흥미로운 점은 <축제>에서 고대의 벽화 이미지를 차용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작품에서는 조선 이후의 산수화 기법 뿐 아니라 윤곽과 단순함을 강조하는 고대의 화법, 그리고 현대적인 소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공간의 서사적 요소들이 한 화면에 병치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정중동 靜中動>과 같은 작품에서는 COVID-19로 인해 지상에 체류하고 있는 5대의 여객기들을 마치 픽토그램처럼 표현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주제는 더욱 더 드라마틱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안의 인물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시간에 몰입하고 있다.

예술감독 유진상

윤세열의 그림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한강과 고수부지를 경계 지은 그의 붓끝이 단순히 그림으로만 그어진 선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경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의 예술 세계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일 것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혹은 진실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 그 정답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치 쟝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윤세열의 작품을 통해 희망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사회와 현실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허무가 아닌 고민점과 묵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라면 윤세열과 같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희망의 끈을 잡고 갈 수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해본다.

박상환(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을 치유하기 위해 나타난 노자」 中

윤세열
b.1976
개인전
2019 <갇힌 공간>, 아트스페이스 H, 서울
2017 <인생지사 회전목마>, 이목화랑, 서울
2016 <이상한 회귀>, 영은미술관, 경기
<몽환도시>, 갤러리밈, 서울
2015 <도시유람>, 이목화랑, 서울
2014 <여정>, 아트스페이스 H, 서울
2013 <도시산책>, 이목화랑, 서울
2012 <공자와 거닐다>, 아트스페이스 H, 서울
2011 <재개발된 도시풍경>, 이목화랑, 서울
<재개발된 도시풍경>, 아트스페이스 H, 서울
2009 <재개발된 도시풍경>, 아카스페이스, 서울
수상
2013 한국은행이 선정한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 한국은행
2012 SeMA Young Artists, 서울시립미술관
레지던시
2020 777레지던시, 양주
2018 예술공간 이아, 제주
2016 영은미술관창작스튜디오, 광주
2014 이중섭미술관창작스튜디오, 제주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 정부미술은행
경남도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영은미술관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해든미술관
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