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은

나는 묘사를 삼킨다

장성은

장성은의 사진에는 주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 때조차도 그의 사진에는 인물에 준하는 대상의 모습이 나타난다. <Rue Visconti>는 오랜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전시를 시작했을 때 처음 소개되었던 사진작품 연작 <Space Measurement>의 일부이다. 이 작품은 앞뒤로 서로 바짝 붙은 채 줄을 서 길을 가로막고 있는 19명의 인물들을 담고있다. 이 낯선 퍼포먼스에서 사람들의 신체는 사물과 기호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을 막고 있는 어떤 것’과 ‘길을 막는다’라는 문장으로 치환되거나, 혹은 벽을 뚫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아가는 어떤 것’과 동일한 내용의 명령으로 치환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그의 작업의 흥미로운 특징이 드러난다. 사진은 신체와 사물과 언어가 교차하는 예외적인 장면을 기록하는 것이다. <Space Hamilton>에서 텅 빈 공간 가운데 구부정하게 몸을 숙이고 있는 인물 위로 공기가 담긴 비닐들이 쌓아 올려진 모습은, 흡사 인물의 신체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인물에 의해 받쳐져 천장에 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예외적인 장면은 사진의 전형적 순간, 즉 시간의 단면이라는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단면은 이전의 수없이 많은 가능성들과 이후의 수없이 많은 가능성들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바로 이러한 가능성들 사이에서 끼어 사진은 알 수 없는 시공간의 단면, 혹은 의미로 가득 찬 세계의 단면을 드러낸다. 즉 ‘이 ‘단면’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장성은의 사진이 연출사진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사진적 단면이 사물이나 문장 혹은 기호 등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은의 최근 전시 <정지는 아무도 보지 못한 거친 짐승이다>의 ‘정지’ 또한 사진적 단면인 동시에 미증유의 사물 혹은 사태로서의 ‘사진’을 가리킨다. 장성은의 작업에서 제목은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 ‘잠영’이라는 의미의 <Underwater Swimming>에서 밀짚모자를 쓴 인물이 온실 속에 서있는 모습은 오로지 제목과의 관계 하에서만 장면의 특이성(singularity)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 안과 물 바깥의 경계 바로 아래쪽이라는 설정은 푸른 빛과 연기로 가득 찬 이 장소와 불가능한 방식으로 상호 연결된다. 즉 ‘온실-물속’ 혹은 ‘푸른 빛-물속에서 본 바깥’ 등의 연결된 기호들로 제시되는 것이다. <Bubble>, <PomPom>, <Empty Room>과 같은 ‘준비된’ 인물 연작에서 사물들로 덮여있는 인물들은 그들의 서있는 자세와 단적인 사물화로 인해 역시 신체-사물-제목 사이 어딘가의 형용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성은에게 있어 사진은 이 위치를 가시화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불가능한 풍경> 연작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풍경사진’에 속하는데, 이 사진들은 정교하게 편집되거나 연출된 풍경이다. 여기 전시된 사진에서는 전경에 보이는 나무들의 경우가 그럴 것이다. 이 나무들은 마치 인물들처럼 좁은 공간을 둘러싸고 ‘모여’ 있다. 이 사진이 뿜어내는 불순한 아우라는 제목을 제외하고는 아무 근거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성은의 전시 제목 <나는 묘사를 삼킨다>는 ‘나는 눈물을 삼킨다’ 혹은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킨다’와 같은 문장들을 떠올린다. 사진은 재현 혹은 묘사를 억누른다. 동시에 그것은 ‘다른 것’을 재현한다. 이 ‘것’(la chose)이 어떻게 사진이 되는지가 우리가 응시해야 하는 대상이다.

예술감독 유진상
장성은은 자신의 작업이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자문하지만, 그 추상성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더 명확하게 그것에 다가서고자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구체적인 삶이 촉발한 추상적 정서를 낱낱이 풀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이거나 은유적인 시적 언어로 또 한 번 우회함으로써 추상을 또 다른 추상으로 재해석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대상을 취하기에 본질적으로 구상일 수밖에 없는 사진 매체로 어떻게 추상을 구현할 수 있는가? 장성은이 택한 답은 연출사진이다.

문혜진(미술비평가), <고독의 위치>, 2019

장성은
b. 1978
개인전
2019 <정지는 아무도 보지 못한 거친 짐승이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8 <나는 묘사를 삼킨다>, BMW Photo Space, 부산
2016 <Writing Play>, 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13 <LOST FORM>,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마음현상:나와 마주하기>,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17 <Light Construction>, 갤러리기체, 서울
2016 <생생화화2016 산책자의 시선>, 경기도미술관, 안산
<SeMA컬렉션 쇼케이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수상
2016 아마도 사진상, 아마도예술공간
레지던시
2014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 스튜디오, 서울
2009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미술창작 스튜디오, 서울
2008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파리
작품 소장
리움 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구하우스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