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의

맑은 차가움

장은의

장은의의 작품을 특징짓는 것은 밝은 바닥에 놓인 역시 밝은 접시와 그 위에 놓인 과일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초록색의 사과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치에 저항하다가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까지 끌려가 사과 육종 연구를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코비니언 아이그너(Korbinian Aigner) 신부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실적인 과일 정물을 보여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그너 신부의 작품들이 사과의 구체적 품종을 기록하기 위해 그려진 것인 반면, 장은의의 회화 작품은 사실성 못지않게 개념적 도상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는 점이다.

Two Breaths for One, 2017, HD video, 1:30 (Performers: Johannes Ulrich Kubiak & Unui Jang)

무엇보다도 장은의의 작품은 위에서 본 시점으로 접시와 그 위에 놓인 과일들을 그리기 때문에 모든 대상들이 원형으로 보인다. 즉 접시의 반듯한 원형과 과일들의 다소 불규칙적인 원형이 대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항적 관계는 제목에 의해 다시 한 번 강조되는데, 예를 들어 <네 개의 원 (세 개의 여름 사과와 접시)>과 같은 제목에 의해 ‘기하학적 도형(자연적 원형들 + 인공적 원형)’과 같은 식의 묘사가 체계적으로 적용된다. 즉 장은의의 회화 속에서는 자연적 산물인 과일과 인공적 생산품인 접시 사이의 동일성 및 차이점이 미세하게 시각화되는 가운데, 자연과 인간이라는 서로 다른 두 항의 공존이 특별히 괄호 안에 서술되어 결국 같은 개념적 분류 안에서 합쳐진다.

다른 한편으로 장은의의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빛’이다. 그의 작품들 뿐 아니라 그의 작업공간까지도 항상 은은하고 밝은 ‘빛’에 의해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빛은 마치 ‘은총’처럼 그 안에 놓여있는 접시와 과일들을 ‘물성’으로부터, 또는 ‘기하학적 본질’로부터 끌어올려 어떤 ‘분위기’로 감싼다. 그 빛이 항상 오른쪽으로부터 온다는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중세 회화에서 신의 위치가 오른편이라는 것을 기억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크라나흐(L. Kranach)의 페인팅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원 (여름 사과와 파란 종지)> 연작은 어두운 배경과 밝은 빛의 대비를 통해 다소 상징적인 해석까지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들은 위에서 본 것이지만 동시에 벽에 걸린 회화작품이라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따라서 관객은 측면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도상학적 시점에 처하게 된다. 장은의의 작품은 회화인 동시에 도상이며, 사실적인 동시에 추상적이며, 현재적인 동시에 오랜 기억들을 소환해낸다. 작가의 섬세하고 투명한 회화적 기법은 이 모든 것들을 물성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로 다가가게 한다. 이 경계의 영역에서 기후는 ‘맑은 차가움’(Clear Coldness), 즉 사물들이 의미 이전의 상태에서 조우하는 특성을 띠게 될 것이다.

예술감독 유진상

“근래 나는 접시나 잔에 과일이나 열매가 놓인 장면을 그림으로써 평범하면서도 이상적인 어떤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접시나 잔의 동그라미와 과일이나 열매의 동그라미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르다. 각각은 인공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에 속해 있으며, 그러므로 각각 다른 방향의 형태적 완벽함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나는 이 장면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서로 다름에 이유를 묻지 않고 각자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사람이 함께 사는 모습에도 없지 않지만 매우 드물게 경험하는 상태이다. 익숙한 이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고,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여겨져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지속하여 진행하고 있다.”

장은의 작가노트

작가는 사과와 인공물이 관계 짓는 순간을 수많은 형식적 변화 속에서 찾아낸다. 이어서 카메라를 이용해 위에서 아래를 향해 수직으로 내려다보며 이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한다. 사진은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기록하고, 이것들이 놓인 위치와 이것들 사이의 크기, 비율 등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그림의 크기와 형태를 결정한다. 그러고 나서 작가 특유의 청명한 파란색이 감도는 캔버스 위에 스케치한다. 그리고 마침내 채색이 시작된다. 형태와 색이 이상적인 열매와 그와는 생경한 인공물이 관계 지어 놓인 연작에서 인공물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둥글지만 저마다의 다양한 표면과 물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연작에서는 그릇이나 접시에 놓인 풋사과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말하자면 장은의는 자연주의 회화 – 있는 그대로 실제의 대상을 재현하는 – 에 대해 본인의 방식으로 도전을 하는 것이다.

에케하르트 노이만 Ekkehard Neumann (Artist, Curator), <여름, 사과가 떨어질 때>, 2019

장은의
b. 1974
개인전
2020 <Circling approach>, Gallery am Schwarzen Meer, 브레멘
2019 <여름, 사과가 떨어질 때>, Haus der Kunst Enniger, 에니거
<A Plate: 나와 다른 당신에게 건네는>, 디스위켄드룸, 서울
2018 <두 개의 원>, 카이스트 리서치앤아트, 서울
<두 개의 원: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어떤 방법>, Haus der Kunst Enniger, 에니거
2017 <두 개의 원>, 창성동 실험실, 서울
2016 <아미의 작가들>, 아미 미술관, 당진
2015 <부재의 감각>, 갤러리 플래닛, 서울
2014 <사소한 환상>, 갤러리 조선, 서울
2013 <진정한 사랑>, 예술공간 플라즈마, 서울
2인전
2017 <Tow Person Show>, Unui Jang&Johannes Ulrich Kubiak, Künstlerhaus im Schlossgarten Cuxhaven, 니더작센
2016 <공교롭게도 회화>, 장은의&임영주, 갤러리 플래닛, 서울
주요 단체전
2021 <YMCA+YWCA>, 갤러리 이마주, 서울
<신소장품전>, 성남큐브미술관, 성남
<비탈길을 좋아했지>, 화이트블럭, 파주
2020 <예비 전속작가제 온라인 기획전시: 매니폴드>,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
<Fair Play>, 디스위켄드룸, 서울
<아트부산>, 벡스코, 부산
<입주작가 쇼케이스전>,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천안
<아트플워크>,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천안
<여행 갈까요>, 뚝섬 미술관, 서울
2019 <Journey with you>, 헤이그라운드, 서울
<오픈 스튜디오: 꿈꾸는 밤>, 화이트 블럭 천안창작촌, 천안
<성남의 얼굴전: 집>, 성남큐브미술관, 성남
<수렴점: 레지던시 효과>, 팔복예술공장, 전주
<Pick Your pic>, 서울로 미디어캔버스, 서울
<리센트 워크 갤러리 프로젝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8 <겨울전>, Haus der Kunst Enniger, 에니거
<오픈스튜디오>, 팔복예술공장, 전주
<우리들의 매개자들>, 팔복예술공장, 전주
<아트 페스타>, 이화여자대학교, 서울
<아트 바캉스>, KB 스타시티 PB 센터, 서울
<Transform>, 팔복예술공장, 전주
2017 <장욱진, 예술혼을 걷다>, 장욱진 미술관, 양주
<Aurora>, 소노아트, 서울
<Art N Work>, SJ Kunsthalle, 서울
2016 <아트 페스타>, 이화여자대학교, 서울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 아카이브전>, 경기창작센터, 안산
<아트 페스타>, 이화여자대학교, 서울
2015 <채색집단(彩林)-모시 모분 모초에 대한 기록>,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나는 무명 작가다>, 아르코 아트센터, 서울
<사물의 꿈>, 아뜰리에 35, 수원
2014 <Affinity 90>, 갤러리 조선, 서울
<오십 가지 방 오만 가지 이야기>, 경기창작센터, 안산
<누구나 사연은 있다>, 경기도 미술관, 안산
<현대 미술 경향 읽기>, 아미 미술관, 당진
<삶 속의 예술>, 이안아트, 서울
<RE-NOVATION>, 한벽원 갤러리, 서울
2013 <콩쥐 팥쥐들의 행진>, 아미 미술관, 당진
<거울 사이_무한가역성>, 이화 아트센터, 서울
<pre 드로잉 비엔날레>, 갤러리 소소, 파주
수상
2021 예비전속작가지원, 예술경영지원센터
2020 예비전속작가지원, 예술경영지원센터
2019 국제예술교류지원, 경기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서울문화재단
예비전속작가지원, 예술경영지원센터
2018 아르코 국제예술교류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 예술창작지원, 서울문화재단
2014 Emerging Artist: 신진작가전시지원 프로그램, 서울시립미술관
2005 최우수 졸업상,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학교
2003 독일 유학 장학금, 주한독일고등교육진흥원
레지던시
2021 Künstlerhaus Bremen, 브레멘
2020 화이트블럭 천안 창작촌, 천안
2019 Haus der Kunst Enniger, 에니거
화이트블럭 천안 창작촌, 천안
2018 Haus der Kunst Enniger, 에니거
팔복예술공장, 전주
2017 Künstlerhaus im Schloßgarten, 쿡스하펜
2014 경기창작센터, 안산
작품 소장
성남큐브미술관
G&M글로벌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카이스트 리서치 앤 아트
주한독일문화원

서사가 담긴 형식의 실험: “에케하르트 노이만의 초상”과 초록 사과
강성은

같은 공간의 전시 장면을 찍은 사진 두 장이 있다. 하얀 문 양옆으로 접시 위에 놓여 있는 초록색 사과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공간도 같고 설치된 작품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사과가 놓여 있는 방향이 조금씩 다르다.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에니거(Haus der Kunst Enniger)에서 열린 장은의의 2018년과 2019년 개인전 《두 개의 원: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어떤 방법》과 《여름, 사과가 떨어질 때》의 전시 전경이다.

이 두 개의 전시 장면을 장은의는 “에케하르트 노이만의 초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에케하르트 노이만(Ekkehard Neumann)은 2018년 장은의의 개인전 중 초록 사과를 그린 그림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호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오랫동안 부정적으로만 여겨 왔던 자신의 차가운 이미지를 사과 그림에서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노이만의 반응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2019년 같은 공간에서 개인전을 다시 열고 ‘사과 방’을 재현했다. 작가는 노이만을 다시 초대해 전시에 대한 글을 부탁했고 노이만은 초록 사과 그림에서 느껴지는 ‘맑은 차가움’에 관한 글을 썼다.

장은의가 그린 초록 사과는 작고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그래서 사람들이 따 먹지도 않아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보잘것없는 작은 사과를 하얀 볼에 담아 그렸다. 그리고 노이만이 이 그림에서 느낀 감정을 통해 작가는 자기 자신을 투영하였다. 장은의는 에케하르트 노이만과 이뤄진 작업을 통한 교감을 전시에 재현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타인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과 화해 혹은 인정을 나타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두 번의 전시 이후 작가는 초록 사과를 그린 그림을 더 발전시켜 나갔다. 초록 사과를 다양한 기물 위에 올려놓고 그리기도 하고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기도 했다. 하얀색 볼을 대신해 진한 파란색 볼에 올려놓아 색의 대비를 통한 변화를 실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가움’을 실험해나갔다.

장은의는 2017년 개수대에 놓인 와인 잔에 떨어진 포도알을 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완벽한 원의 형태인 와인 잔과 타원형의 자연스러운 포도알이 어울리는 모습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보았다. 그 후 작가는 ‘기물 위에 올려놓은 과일’을 위에서 본 시점의 구도로 그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구도의 그림은 다양한 과일과 기물로 대상이 바뀌며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록 사과 그림은 가장 여러 번 변주된 주제다.

장은의는 자신의 작업은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낯선 순간, 혹은 특별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겨 그렸다. 놀이터, 텅 빈 아파트, 접시에 정갈하게 깎아 놓은 과일, 밥공기에 담긴 밥 같은 일상적인 풍경과 정물을 주로 그렸다. 그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의 관계, 어떤 사건이 일어난 공간의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그는 작품에서 서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기물 위에 올려놓은 과일’ 그림에서 그의 작업은 서사적인 내용을 담는 것에서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살짝 이동했다. 그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작업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한다. 접시나 화병 같은 기물 위에 과일을 올려놓고 빛의 방향과 그림자를 정교하게 고려하여 정물의 자리를 잡는다. 그 위에 카메라를 정확히 수평으로 놓아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촬영하여 그것을 캔버스에 옮겨 그린다. 카메라로 기록한 피사체를 캔버스에 그리는 과정도 역시 정확한 계획에 따른다. 엷은 푸른색으로 바탕칠한 캔버스에 연필로 스케치하고 그 선을 따라 엷게 색을 칠한다. 이 과정에서 우연의 요소가 개입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장은의의 그림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작품의 배경은 정물이 놓여 있는 실재의 바닥이 아니다. 배경과 정물 사이의 그림자는 정물이 바닥과 떨어져 있는 듯 공간을 두고 있다. 과일은 기물에 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그 위에 붕 뜬 것 같다. 이렇게 위에서 본 시점으로 그린 그림을 관객이 보는 시점은 측면이다. 측면에서 본 작품 속의 정물은 전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관객의 시점과 정물을 촬영할 때 카메라의 시점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시각적인 긴장감이다.

이 작업에서 기물이나 과일은 작가의 사적인 경험과 관계를 표상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리는 행위에 집중한다. 고정된 시점에서 보이는 조금씩 다른 대상이 만들어 내는 조금씩 다른 형태의 미묘함을 그리면서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으나 이전의 작품에서 충분히 드러나 있었던 회화에 있어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다. 사뭇역설적이지만 작가는 개인의 서사가 담긴 형식적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장은의는 전시 포스터나 홍보물에 자신이 그린 정물을 늘어놓고 측면으로 찍은 사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저 동그란 파란 원으로 보였던 것은 허리가 잘록한 화병임을 보여준다. 워커의 생김새를 알 수 있고 볼의 깊이와 컵의 옆면에 새긴 문양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의 정물이 원래 생긴 모양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일상 속의 모습을 환기한다.

오늘날 예술가에게 일상은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예술가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평범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물, 기억, 사건 그리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끌어내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다. 장은의가 일상에서 발견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서사와 조형미의 주고받음이다. 다시 “에케하르트 노이만의 초상”으로 돌아가 보자. 장은의가 두 번째 전시에서 재현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사가 담긴 형식의 실험: “에케하르트 노이만의 초상”과 초록 사과
강성은

같은 공간의 전시 장면을 찍은 사진 두 장이 있다. 하얀 문 양옆으로 접시 위에 놓여 있는 초록색 사과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공간도 같고 설치된 작품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사과가 놓여 있는 방향이 조금씩 다르다.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에니거(Haus der Kunst Enniger)에서 열린 장은의의 2018년과 2019년 개인전 《두 개의 원: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어떤 방법》과 《여름, 사과가 떨어질 때》의 전시 전경이다.

이 두 개의 전시 장면을 장은의는 “에케하르트 노이만의 초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에케하르트 노이만(Ekkehard Neumann)은 2018년 장은의의 개인전 중 초록 사과를 그린 그림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호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오랫동안 부정적으로만 여겨 왔던 자신의 차가운 이미지를 사과 그림에서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노이만의 반응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2019년 같은 공간에서 개인전을 다시 열고 ‘사과 방’을 재현했다. 작가는 노이만을 다시 초대해 전시에 대한 글을 부탁했고 노이만은 초록 사과 그림에서 느껴지는 ‘맑은 차가움’에 관한 글을 썼다.

장은의가 그린 초록 사과는 작고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그래서 사람들이 따 먹지도 않아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보잘것없는 작은 사과를 하얀 볼에 담아 그렸다. 그리고 노이만이 이 그림에서 느낀 감정을 통해 작가는 자기 자신을 투영하였다. 장은의는 에케하르트 노이만과 이뤄진 작업을 통한 교감을 전시에 재현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타인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과 화해 혹은 인정을 나타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두 번의 전시 이후 작가는 초록 사과를 그린 그림을 더 발전시켜 나갔다. 초록 사과를 다양한 기물 위에 올려놓고 그리기도 하고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기도 했다. 하얀색 볼을 대신해 진한 파란색 볼에 올려놓아 색의 대비를 통한 변화를 실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가움’을 실험해나갔다.

장은의는 2017년 개수대에 놓인 와인 잔에 떨어진 포도알을 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완벽한 원의 형태인 와인 잔과 타원형의 자연스러운 포도알이 어울리는 모습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보았다. 그 후 작가는 ‘기물 위에 올려놓은 과일’을 위에서 본 시점의 구도로 그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구도의 그림은 다양한 과일과 기물로 대상이 바뀌며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록 사과 그림은 가장 여러 번 변주된 주제다.

장은의는 자신의 작업은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낯선 순간, 혹은 특별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겨 그렸다. 놀이터, 텅 빈 아파트, 접시에 정갈하게 깎아 놓은 과일, 밥공기에 담긴 밥 같은 일상적인 풍경과 정물을 주로 그렸다. 그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의 관계, 어떤 사건이 일어난 공간의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그는 작품에서 서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기물 위에 올려놓은 과일’ 그림에서 그의 작업은 서사적인 내용을 담는 것에서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살짝 이동했다. 그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작업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한다. 접시나 화병 같은 기물 위에 과일을 올려놓고 빛의 방향과 그림자를 정교하게 고려하여 정물의 자리를 잡는다. 그 위에 카메라를 정확히 수평으로 놓아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촬영하여 그것을 캔버스에 옮겨 그린다. 카메라로 기록한 피사체를 캔버스에 그리는 과정도 역시 정확한 계획에 따른다. 엷은 푸른색으로 바탕칠한 캔버스에 연필로 스케치하고 그 선을 따라 엷게 색을 칠한다. 이 과정에서 우연의 요소가 개입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장은의의 그림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작품의 배경은 정물이 놓여 있는 실재의 바닥이 아니다. 배경과 정물 사이의 그림자는 정물이 바닥과 떨어져 있는 듯 공간을 두고 있다. 과일은 기물에 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그 위에 붕 뜬 것 같다. 이렇게 위에서 본 시점으로 그린 그림을 관객이 보는 시점은 측면이다. 측면에서 본 작품 속의 정물은 전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관객의 시점과 정물을 촬영할 때 카메라의 시점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시각적인 긴장감이다.

이 작업에서 기물이나 과일은 작가의 사적인 경험과 관계를 표상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리는 행위에 집중한다. 고정된 시점에서 보이는 조금씩 다른 대상이 만들어 내는 조금씩 다른 형태의 미묘함을 그리면서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으나 이전의 작품에서 충분히 드러나 있었던 회화에 있어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다. 사뭇역설적이지만 작가는 개인의 서사가 담긴 형식적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장은의는 전시 포스터나 홍보물에 자신이 그린 정물을 늘어놓고 측면으로 찍은 사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저 동그란 파란 원으로 보였던 것은 허리가 잘록한 화병임을 보여준다. 워커의 생김새를 알 수 있고 볼의 깊이와 컵의 옆면에 새긴 문양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의 정물이 원래 생긴 모양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일상 속의 모습을 환기한다.

오늘날 예술가에게 일상은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예술가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평범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물, 기억, 사건 그리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끌어내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다. 장은의가 일상에서 발견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서사와 조형미의 주고받음이다. 다시 “에케하르트 노이만의 초상”으로 돌아가 보자. 장은의가 두 번째 전시에서 재현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