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Flow

김윤수

김윤수의 작업은 공기, 바람 혹은 물의 흐름을 다룬다. 작가는 이러한 흐름을 때로는 하나의 화면을 응시하는 방식으로, 혹은 여러 개의 화면들을 공간 속에 이어서 전시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화면은 최소한의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는 매번 하나의 색채 –이를 테면 파란색, 노란색, 혹은 아주 옅은 회색 등-만을 사용한다. 이로써 전시공간은 단일한 공기, 단일한 흐름, 단일한 감정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채워진다는 표현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김윤수의 전시공간은 희박하다. 그가 다루는 대상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의 움직임인 만큼, 그의 작품 속 화면도 역시 최소한의 일렁임만을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울트라마린’은 ‘바다 저편’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 신비스러운 청색은 단순히 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멀고 아득한 닿을 수 없는 공간을 이야기한다. 나에게 ‘울트라마린’의 이름을 가진 파스텔, 물감, 안료 등을 수집하는 일은 하늘과 바다, 산과 구름 사이의 빛깔들, 그 그리움의 공간들을 담아오는 것이었다. ‘울트라마린’…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넘어서 닿고 싶은 저편의 세계이다.

이것이 그저 하나의 추상적인 관념일지라도 신비를 향한 순수한 정신은 마법처럼 다른 차원으로의 통로를 열어준다. 나는 그녀의 바다에서 그의 하늘까지가 되기도 하고, 그녀의 산과 그의 구름 사이 어느 망망한 시간대에서 표류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져들듯 ‘울트라마린’은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여 미세한 입자의 무한공간으로 퍼트린다. ‘울트라마린’은 나를 매혹한다. 공간은 아득히 깊어지고 끝없이 넓어진다.

2007년 작 <표류그녀의 바다에서 그의 하늘까지, 그녀의 산과 그의 구름사이>는 캔버스에 파스텔로 ‘울트라마린’ 파란색을 짙게 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전시장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걸려 있다는 점이다. 짙은 푸른색의 밤하늘이거나 혹은 물감의 이름처럼 깊은 바다 속을 나타낸 것일 텐데, 이 작품을 보려면 관객은 뒤로 멀리 물러서거나 2010년 작 드로잉 <전망그녀의 바다에서 그의 하늘까지, 그녀의 산과 그의 구름사이>에서처럼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야 한다. 이러한 연출이 의도하는 바는 ‘몰입’이다.
끝 없 는 지 평 에 서 서 공 간 의 물 결 을 바 라 본 다 나 는 이 곳 에 있 고 또 한 저 곳 에 있 다 시 간 에 구 멍 이 숭 숭 뚫 리 고 공 간 은 물 결 치 고 사 고 는 미 끄 러 진 다
김윤수의 입체작품인 <바람의 표면>, <저편의 노래(웨인에게)>, <파도>, <공기>는 작가가 수집한 사람들의 발바닥 모양으로 재단된 투명 PVC 비닐을 쌓아 올린 것이다. 이렇게 쌓은 작품은 맑고 투명한 푸른색을 띠게 되는데, 이 때문에 물과 공기, 나아가 파도나 회오리바람과 같은 형태가 된다. 이동, 이주를 나타내는 발바닥이 자연의 원소들로 환원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들은 다시 해체되었다가 장소가 바뀌면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시적 설치 방식 역시 김윤수의 작업을 잘 수식하는 특징이다.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어김없이 다가오고 지나가는
모든 순간순간들
멈춤도 망설임도 없는 무심함은
매번 새롭고 놀라운 경이로움으로
나를 붙든다

수 년 전부터 내가 해온 작업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발 프린트를 수집하고, 그 발바닥의 면적을 따라 0.8mm 두께의 투명한 비닐을 연차적으로 오려내고 쌓아가는 일이었다. 반복을 통해 처음의 명확하던 형상은 점점 모호해지다 마침내 사라지게 된다. 긴 노동의 시간 속에서 시선은 분별을 지우고 깊이의 풍경이 된다. 비닐의 겹이 수십, 수백 번 겹쳐지면서 아득한 푸른빛의 심연을 드러내고, 쌓아가는 방법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때로는 바람이 되기도, 강이 되기도, 산이 되기도… 구름과 같은 풍경을 그려 놓기도 한다.
<달의 소리 (4/3600 시간)>,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에서 작가는 여러 개의 작은 연작들이 관객을 중심으로 둘러쌀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관객은 자신을 둘러싼 작품들이 마치 자연의 파도나 공기가 그러하듯 매번 각각 다른 순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물론 각각의 장면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나 일렁이는 하늘의 구름들이 그렇듯 거의 같은 모습일 것이며 아주 미세한 차이만을 드러낼 것이다. 관객을 둘러싼 작품들의 순환은 끝없이 이어지는 흐름의 무한한 반복에 대한 은유이다. 달의 인력에 의한 조수간만은 매일 모든 바닷가를 그것의 빛과 함께 철썩이며 어루만진다. 하늘의 구름과 대기의 바람은 국경과 질곡을 부드럽게 가로지른다. 그것은 극도로 미세하고 투명한 것들을 통해 모든 것들 위를 지배하는 부드러움을 그리는 것이다.

예술감독 유진상
‘김윤수는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자연현상을 시상을 가다듬듯이 섬세하게 묘사한다. <달의 소리 (4/3600시간)>는 달이 차오를수록 일렁임과 소리가 커지는 파도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바다에 비친 달빛과 파도의 일렁임을 4초 동안 연차적으로 묘사한 드로잉은 달의 평균주기에 맞춰 30점으로 구성된다. 달이 차오르는 형태와 같이 펼쳐져 자연이 들려주는 노래를 아로새겼다.’

날씨의 맛 展에서 발췌

‘바람이 스쳐가는 듯이 흑연으로 그려낸 필치는 마치 뺨과 온몸에 바람이 맞닿을 때의 공감각적 심상을 자아낸다.’

날씨의 맛 展에서 발췌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
사막을 그리고 구름을 그리고 언덕을 감싸고 강기슭을 맴돌고 숲을 흔들고 절벽을 쓰다듬고
물결 위를 떠돌고 끝없이 수놓이는 꽃밭을 지나 당신에게 닿는다.

김윤수의 작업과 삶은 유목민처럼 설치와 이동이 가벼운 접이식 구조를 가진다. 이는 마음 한 구석, 세상의 이치에서 파생되는 경계의 지점들을 쉼 없이 오가며 주시하는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삶이 닿은 지점에서 사물은 정신으로 이어지고, 일상적인 재료들을 내면으로 들여와 이접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 부산물을 만들어 나간다. 그의 손은 노동집약적인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무한과 만난다. 무한의 존재는 부재하는 것들과 흩어지는 것들 사이에서 작가의 사유 안으로 스며들어 물질적 상상으로 공간 속에 다시 태어난다. 작업은 그에게 있어서 삶으로 나아가는 기록이며 삶이 그에게 들어와 쓰여지는 풍경이다.

이관훈(큐레이터, Project Space SARUBIA)

김윤수
b. 1975
개인전
2017 <흰 눈이 나리는 경계를 거닐 듯이>, 갤러리소소, 파주
2015 <켜두는 밤>, 알떼에고 / 수토메, 서울
2011 <가장 푸른 곳>, 갤러리소소, 파주
2008 <‘Ultramarine’-바다 저편>,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05 <바람의 砂原>, 갤러리 도스, 서울
2004 <무심함을 그리워 할 戀>, 갤러리현대 윈도우갤러리, 서울
2003 <무심함을 그리워 할 戀>, 스페이스몸 미술관, 청주
2001 <김윤수 개인전>, 갤러리 사간, 서울
2인전
2017 <너와 나의 시간>, 김윤수&이창훈, 경기문화재단 로비갤러리, 수원
2014 <지금 그리고 저편>, 김윤수&노충현, 누크 갤러리, 서울
주요 단체전
2020 <물질과 상상>, 닻미술관, 광주
<2020 소장품전-오늘의 질문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19 <퇴적된 유령들>, 청주시립 대청호미술관, 청주
2018 <예술가의 명상법: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사비나미술관, 서울
<날씨의 맛>,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16 <Artist Book Space>, 닻미술관, 광주
<밤의 가장자리>, OCI미술관, 서울
<자연, 그 안에 있다>, 뮤지엄SAN, 원주
2015 <소마드로잉: 무심(無心)>, 소마미술관, 서울
<블랙홀 썬>,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
<세마 살롱: 2014 신소장작품>,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4 <무아 경(無我 景)>, 닻미술관, 광주
2010 <풍경의 재구성>,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가만히 살아있는>, 포스코미술관, 서울
<이異형形>, 스페이스공명, 서울
2009 <신호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프로포즈 7-vol.4>, 금호미술관, 서울
<Fleeting>,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레지던시
2014-2015 화이트블럭 레지던시, 파주
2008-2009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2006-2007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작품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OCI미술관
닻미술관
아트센터화이트블럭
이상원미술관

풍경의 재구성
고충환(미술비평)

김윤수 작가의 작업을 견인하는 경우로 치자면 투명 비닐 패드를 소재로 한 입체 조형 작업과 울트라마린 블루를 들 수 있다. 울트라마린 블루가 개념을 이끈다면, 입체 조형 작업은 그 개념을 조형으로 옮긴 경우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개념 축으로부터 다른 차이 나는 작업들이 파생되고 변주된다고 해도 좋다.

먼저 입체 조형 작업을 보면, 아마도 작가의 작업 중 상대적으로 뚜렷한 형태와 손에 잡히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작업에 해당할 것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발을 모티브로 하는데, 몸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길, 여정, 여로에 빗댄 삶의 비유에서 착상된 것일 터이다. 작업에서 작가는 일정한 두께를 갖는 투명한 비닐 패드로 발 모양 그대로 오린다. 그리고 그렇게 오린 발 모양을 다른 패드에 대고 오리는데, 이때 패드 자체의 두께 때문에 과정이 진행되면서 점차 최초 형태가 뭉그러져 대략적인 유선형의 곡선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오린 발 모양의 패드를 쌓아 올려 하나로 중첩 시키면 최초 모본에 해당하는 형태 그러므로 꼭대기가 발 모양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형태 전체가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 그러므로 발자국의 궤적을 하나의 지층처럼 자기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존재가 지나간 자리, 존재가 지나가면서 남긴 자국을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가 해변이나 사막에 아로새겨진 발자국 같고,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면서 남긴 모래톱 같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그러므로 바람이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간 움푹 파인 자국 같고(패드가 만든 형태 자체는 양각이지만, 투명한 탓에 음각으로도 보임), 패드와 패드가 겹치는 지점에 라인이 생기면서 층 구조를 만드는 것이 등고선 같고, 산 같고, 절벽 같고, 회오리 같고,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는, 변화무상한, 그래서 덧없는 구름 같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발이 오만 데로 가면서 유사 풍경을, 의식(아니면 무의식)의 풍경을, 내면 풍경을 만든다.
비록 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발이 오만대로 가면서, 의식을 따라 흐르면서 오만가지 형태로 변태 되는 형태가 의식의 흐름 기법(마르셀 프루스트)을 연상시키고,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는 점에서는 무정형(조르주 바타유)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이런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무정형은 입체 조형에서보다는 구름 드로잉, 하늘 드로잉, 별빛 드로잉, 달빛 드로잉, 파도 드로잉과 같은 일련의 드로잉이나 이를 묶어낸 책 작업에서 더 흐릿하게, 더 희박하게, 더 애매하게, 더 섬세하게, 더 깊게, 더 시적으로 전개되고 확장되고 심화된다.

그리고 울트라마린 블루는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이라는 말이다. 그 말속에 오리엔탈리즘과 어쩌면 식민제국주의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작가는 그 색깔 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안료와 화구 점토와 사물을 가리지 않고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을 수집한다.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드로잉을 하고, 오브제를 만든다. 하늘을 그리고, 구름을 그리고, 별빛을 그리고, 적막을 그린다. 여기에 비닐 패드를 소재로 한 입체 조형 작업 역시 투명하고 깊은 청색을 떠올리게 된다.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에 대한 자발적인 마니아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바다 저편에서 온 것으로 치자면 낭만주의도 있고 형이상학도 있다. 존재가 유래한 곳과 돌아갈 곳, 죽음과 내세, 영성과 숭고 같은, 형이상학의 부수물이 있고, 작가는 그 부수물을 그리고 만든다. 그리고 바다 저편에는 미처 의미화되지 못한 말들, 의미화되기 이전의 재료에나 해당할 말들, 의미화를 거부하는 말들, 그럼에도 억지로 의미화하면 왜곡되고 마는 말들이 산다. 그러므로 흐릿한, 희박한, 애매한, 섬세한, 깊은, 시적인, 아마도 바다 저편에서 추수한 말들을 재구성한 작가의 작업은 의미화(의미 바깥에는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된다)와 개념화(모든 것은 개념으로 환치되어야 한다)에 맞춰진 제도의 기획 그러므로 욕망으로부터 탈주선을 그리는 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들, 드로잉들, 사진들, 오브제들, 설치와 설치의 부수물들, 두루마리들, 병풍 형식의 그림 구조물들을 매개로 시간의 법칙을 넘고 공간의 법칙을 넘어, 공간(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아득히 깊어지고 끝없이 넓어지는 곳으로 순간이동 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근작에서의 허밍 허밍(혼자 부르는 콧노래 혹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은 시적이다. 일관된 서사, 닫힌 서사에 바탕을 둔 소설적 서사와 비교해보면 그 행간이며 여백이 넓은 편이다. 그만큼 비결정적이고, 가변적이며, 가역적인 구조이고 생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똑 떨어지는 자기 완결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작업도 있지만, 대개는 무엇과 무엇이 만나고,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지에 따라서 매번 그 의미가 달라지는, 그런, 열린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의미론에서는 그 자체 이미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의미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 논리가 의미를 만든다고 본다. 그림이든 오브제든 어떤 상황 속에 담길 때 비로소 의미는 발생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상황이 달라지면 의미 또한 달라진다. 이처럼 상황 결정적 작업에서 연출(개념 연출과 공간 연출을 포함하는)은 사실상 창작의 또 다른 한 경우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작가는 개념을 연출하고 공간을 연출하면서 하나의 풍경을 재구성한다. 그렇게 매번 한 권의 시집 같은 풍경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여기에 순간이동이 가능한 접이식 풍경(그리고 아마도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휴대용 풍경마저)에 대한 발상도 주목해볼 일이다.

풍경의 재구성
고충환(미술비평)

김윤수 작가의 작업을 견인하는 경우로 치자면 투명 비닐 패드를 소재로 한 입체 조형 작업과 울트라마린 블루를 들 수 있다. 울트라마린 블루가 개념을 이끈다면, 입체 조형 작업은 그 개념을 조형으로 옮긴 경우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개념 축으로부터 다른 차이 나는 작업들이 파생되고 변주된다고 해도 좋다.

먼저 입체 조형 작업을 보면, 아마도 작가의 작업 중 상대적으로 뚜렷한 형태와 손에 잡히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작업에 해당할 것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발을 모티브로 하는데, 몸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길, 여정, 여로에 빗댄 삶의 비유에서 착상된 것일 터이다. 작업에서 작가는 일정한 두께를 갖는 투명한 비닐 패드로 발 모양 그대로 오린다. 그리고 그렇게 오린 발 모양을 다른 패드에 대고 오리는데, 이때 패드 자체의 두께 때문에 과정이 진행되면서 점차 최초 형태가 뭉그러져 대략적인 유선형의 곡선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오린 발 모양의 패드를 쌓아 올려 하나로 중첩 시키면 최초 모본에 해당하는 형태 그러므로 꼭대기가 발 모양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형태 전체가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 그러므로 발자국의 궤적을 하나의 지층처럼 자기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존재가 지나간 자리, 존재가 지나가면서 남긴 자국을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가 해변이나 사막에 아로새겨진 발자국 같고,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면서 남긴 모래톱 같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그러므로 바람이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간 움푹 파인 자국 같고(패드가 만든 형태 자체는 양각이지만, 투명한 탓에 음각으로도 보임), 패드와 패드가 겹치는 지점에 라인이 생기면서 층 구조를 만드는 것이 등고선 같고, 산 같고, 절벽 같고, 회오리 같고,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는, 변화무상한, 그래서 덧없는 구름 같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발이 오만 데로 가면서 유사 풍경을, 의식(아니면 무의식)의 풍경을, 내면 풍경을 만든다.
비록 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발이 오만대로 가면서, 의식을 따라 흐르면서 오만가지 형태로 변태 되는 형태가 의식의 흐름 기법(마르셀 프루스트)을 연상시키고,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는 점에서는 무정형(조르주 바타유)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이런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무정형은 입체 조형에서보다는 구름 드로잉, 하늘 드로잉, 별빛 드로잉, 달빛 드로잉, 파도 드로잉과 같은 일련의 드로잉이나 이를 묶어낸 책 작업에서 더 흐릿하게, 더 희박하게, 더 애매하게, 더 섬세하게, 더 깊게, 더 시적으로 전개되고 확장되고 심화된다.

그리고 울트라마린 블루는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이라는 말이다. 그 말속에 오리엔탈리즘과 어쩌면 식민제국주의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작가는 그 색깔 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안료와 화구 점토와 사물을 가리지 않고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을 수집한다.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드로잉을 하고, 오브제를 만든다. 하늘을 그리고, 구름을 그리고, 별빛을 그리고, 적막을 그린다. 여기에 비닐 패드를 소재로 한 입체 조형 작업 역시 투명하고 깊은 청색을 떠올리게 된다. 바다 저편에서 온 청색에 대한 자발적인 마니아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바다 저편에서 온 것으로 치자면 낭만주의도 있고 형이상학도 있다. 존재가 유래한 곳과 돌아갈 곳, 죽음과 내세, 영성과 숭고 같은, 형이상학의 부수물이 있고, 작가는 그 부수물을 그리고 만든다. 그리고 바다 저편에는 미처 의미화되지 못한 말들, 의미화되기 이전의 재료에나 해당할 말들, 의미화를 거부하는 말들, 그럼에도 억지로 의미화하면 왜곡되고 마는 말들이 산다. 그러므로 흐릿한, 희박한, 애매한, 섬세한, 깊은, 시적인, 아마도 바다 저편에서 추수한 말들을 재구성한 작가의 작업은 의미화(의미 바깥에는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된다)와 개념화(모든 것은 개념으로 환치되어야 한다)에 맞춰진 제도의 기획 그러므로 욕망으로부터 탈주선을 그리는 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들, 드로잉들, 사진들, 오브제들, 설치와 설치의 부수물들, 두루마리들, 병풍 형식의 그림 구조물들을 매개로 시간의 법칙을 넘고 공간의 법칙을 넘어, 공간(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아득히 깊어지고 끝없이 넓어지는 곳으로 순간이동 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근작에서의 허밍 허밍(혼자 부르는 콧노래 혹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은 시적이다. 일관된 서사, 닫힌 서사에 바탕을 둔 소설적 서사와 비교해보면 그 행간이며 여백이 넓은 편이다. 그만큼 비결정적이고, 가변적이며, 가역적인 구조이고 생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똑 떨어지는 자기 완결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작업도 있지만, 대개는 무엇과 무엇이 만나고,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지에 따라서 매번 그 의미가 달라지는, 그런, 열린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의미론에서는 그 자체 이미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의미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 논리가 의미를 만든다고 본다. 그림이든 오브제든 어떤 상황 속에 담길 때 비로소 의미는 발생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상황이 달라지면 의미 또한 달라진다. 이처럼 상황 결정적 작업에서 연출(개념 연출과 공간 연출을 포함하는)은 사실상 창작의 또 다른 한 경우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작가는 개념을 연출하고 공간을 연출하면서 하나의 풍경을 재구성한다. 그렇게 매번 한 권의 시집 같은 풍경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여기에 순간이동이 가능한 접이식 풍경(그리고 아마도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휴대용 풍경마저)에 대한 발상도 주목해볼 일이다.